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칠리아 왕국 (문단 편집) ==== 무슬림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진출 ==== 한편, 시칠리아는 652년과 669년에 이집트에서 출진한 무슬림 해군의 공격을 받았다. 동로마 제국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7세기 말엽부터 시칠리아에 테마를 설치하고 군사 총독이 섬의 방위를 책임졌다. [[무슬림의 마그레브 정복 전쟁]]으로 북아프리카가 무슬림의 수중에 넘어간 후, 무슬림 함대는 703년, 728년, 729년, 730년, 731년, 733년, 734년에 걸쳐 시칠리아를 습격했다. 740년에는 아프리카 총독 하빕에 의해 [[시라쿠사]]가 함락되었지만, [[베르베르 대항거]]로 [[마그레브]]가 혼란에 빠지자 곧 철수했다. 827년,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아글라브 왕조]]가 시칠리아에서 동로마 제국에 반기를 든 [[에우페미오스]]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여 시칠리아로 쳐들어갔다. 이리하여 벌어진 [[무슬림의 시칠리아 정복 전쟁]]은 무슬림 세력이 이제까지 벌인 정복 전쟁과는 달리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시칠리아 만큼은 절대로 내줄 수 없다고 여긴 동로마 당국의 적극적인 원조와 현지 주민들의 항전 의지, 전염병 창궐, 아랍인과 베르베르인간의 내분 등 여러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글라브 왕조는 지지부진한 전쟁에도 물러서지 않고 [[지하드]]를 명분삼아 전쟁을 지속한 반면, 동로마 제국은 멀리 떨어진 시칠리아에 지원을 계속하기엔 불가리아와 아바스 왕조의 압박이 갈수록 심해졌기에 불가능했다. 결국 902년 마지막까지 항전하던 타오르미나 요새가 함락되고 남은 기독교 요새들이 복속되면서 시칠리아 전역이 무슬림의 영토가 되었다.무슬림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시칠리아 토후국]]을 세우고 지중해 해안 지역들을 지속적으로 약탈하고 기독교인들을 노예로 팔아넘겼다. 그러면서도 지중해 해상 무역을 주관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고, 이를 발판삼아 이슬람 문화를 시칠리아에서 꽃피웠다. 무슬림들은 시칠리아를 지속적으로 공략하는 한편 이탈리아 본토에 손을 뻗었다. 840년 말 또는 841년 초 남부 이탈리아의 해안 도시 바리를 일시적으로 공략했고, 847년 아글라브 왕조의 모울라(노예 출신 관료)였던 칼푼이 바리를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탈취하여 [[바리 토후국]]을 세웠다. 바리 토후국은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며 동로마 제국과 랑고바르드계 공국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871년 이탈리아 왕 [[루도비코 2세]]가 이끄는 프랑크-독일-랑고바르드 연합군과 동로마 함대의 수륙 협공에 의해 바리가 함락되면서 몰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